[Essay Garden]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찾아가다


2012년 시댁 여 조카의 결혼식을 보러 뉴욕을 방문하고 두 번째 뉴욕행이다. 이번 여행은  지난해 가을 볼티모어에서 뉴욕 아스토리아(Astoria)로 이사 온 막내 이모님을 뵈러 갔다. 또 일요일에는 나와 가까운 대학 후배의 딸 결혼식까지 참석했으니 5일간의 짧은 일정이지만 알찬 여행이었다.

비행기가 무사히 이륙하고 착지 할 때마다 나는 조종사에게 두 손을 모으며 진심으로 감사한다. 최근 사우스 웨스트의 창문이 부서진 비행기를 침착한 여조종사가 공항으로 무사히 착륙시켜 단 한사람 희생자만 있었던 사고 때문이다. 그러기에 각각의 자리에서 양심과 책임으로 최선을 다하고 살아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오늘은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맨해튼(Manhattan)으로 간다. 지하철을 잘못 타 오르락내리락하며 시간을 좀 날렸기에 우린 차라리 구경하면서 걸어가는 게 빠를지도 모른다며 프랭클린 역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만난 멋진 백인 여인에게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가는 지름길을 물었더니 친절했다. 미리암(Miriam)이라는 헝가리출신 신문기자는 초면이지만 우린 길에 서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사진도 찍고 미리암은 내 딸과 페이스 북으로 친구도 되었다.

우린 맨해튼 최남단 부두를 향해 마지막 배를 타려고 바삐 걸어갔다.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월가도 지나고 쌍둥이 무역회관 자리를 지나 항구입구의 긴 줄에 서서 몸 검사를 마치고 관광 페리에 올랐다. 유럽과 다른 나라 관광객들로 언어도 다양했다.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자 관광객들은 모두 사진기를 들었다. 맨해튼의 빌딩과 출렁거리는 바다풍경이 멋있다.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선물해 준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가 시작했다. 2년간의 보수공사를 마치고 2013년 독립기념일 날에 개장한 공원이다. 2012년 10월 하순 뉴욕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Sandy)로 자유의 여신상 공원주변이 피해를 입었기 에다. 공원에 들어서는데 구수한 냄새가 진동하니 우린 갑자기 허기가 느껴져 새롭게 단장된 식당에서 맛있는 미국 음식을 간단히 먹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와야 했는데, 근처에 있는 엘리스 섬은 시간이 부족해 갈수가 없었다. 그나마 미국에서 베풀어주는 시니어 디스카운트 덕에 내 표를 몇 달러 싸게 샀기에 위로받았다. 안내소에 들어가 5분짜리 영상을 보고, 거대한 동상을 향해 사진을 찍으며 아마 절반쯤 돌았을까.

직원들이 공원 관람 시간이 끝났다며 다시 부두로 돌아가라며 길을 막았다. 동상 주변은 지금도 공사 중이다. 여신상 내부 구경을 하려면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니 세계적으로 얼마나 유명한 곳인지 상상이 간다.

맨해튼으로 돌아가는 배를 기다리며 긴 줄을 서있는데 부롱즈(Bronx)에 사는 후배 경숙이 저녁을 대접하겠다며 부두에서 기다린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우린 함께 2001년 이슬람 광신들이 날벼락처럼 무너뜨린 뉴욕의 상징이었던 쌍둥이 세계무역회관 터로 걸어갔다. 9·11 테러 빈 터에 세워진 하염없이 흐르는 분수대의 통곡소리가 내 숨을 멈추게 한다.

새겨진 조각이름 위에는 여백이 없어서인지 종종 흰 장미 송이와 꽃 봉어리가 한 개 씩 놓여있다. 아직도 순수하고 감정이 풍부한편인 나의 딸은 세상에 없는 그 아까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금방 눈시울을 적신다. 그 모습에 내 후배가 놀라는 표정이다. 책을 좋아하는 딸은 포장마차 서점에서 당시 현장 사진과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두꺼운 책을 한권 샀다. 나 역시도 해마다 9월 11일이 오면 희생자의 유족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슬픔을 극복하고 어떻게 잘 지내는지 궁금해지며 마음이나마 함께 하곤 한다.

그리고 오늘 만난 미리암이 꼭 들려 보라던 세계무역센터 역(Oculus)에 들렸다. 2016년 3월 3일 개관한 건물의 외관은 하얀 새 날개 뼈다귀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온 사방이 흰색이라 텅 빈 공간이 섬뜩하기도 했다. 이 건축의 조각가는 고통을 털고 새처럼 날아가시라는 넋을 위로하는 마음을 담았을까. 독특한 조형이 아름답기보다는 나는 매우 슬펐다.

갑자기 사고가 났는지 경숙의 남편이 전화로 호출하는 바람에 우린 분위기가 깨졌다. 코리아 타운 32가까지 지하철로 올라가기엔 시간도 촉박했다. 노란 색깔의 택시를 탔다. 맨해튼에서 운전 경력 20년차인 76세 필립핀 이민자 할아버지 기사님은 퇴근시간이라 교통 체증이 심했지만 잘 빠져나갔다. 곧 우린 한국말과 영어간판이 보이는 코리아타운 32가에 도착했다. 택시 값은 18달러에 팁까지 20불 주었으니 괜찮다.

전날 저녁에도 사촌이랑 예행연습으로 32가로 나와 북창동 순두부에서 저녁을 먹었다. 고객도 많았지만 로스앤젤리스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구멍가게 같은 H마트가 반가워 들어가 보니 모든 게 조금 비쌌지만 다듬어 놓은 생선을 샀다. 금싸라기 땅에 고려서적이란 책방이 있는 걸보니 역시 수준 높은 뉴요커들이 살고 있었다.

32가 거리는 사람들로 낮이나 밤이나 활기가 넘쳤지만, 길가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아 나는 지나칠 때마다 목이 아팠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북쪽 아래층의 빈 사무실들, 언제면 미국 경기가 회생이 될까. 해마다 기업들이 망하고 사람들이 직장을 잃으니 소비할 돈도 없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라 나는 자리에 기대어 회상에 잠긴다. 90세 나이에도 방 안에서 운동 열심히 하시고 ‘미주미’라는 정말 맛있던 뷔페식당에서 잘 드시던 이모님의 강인한 모습. 나의 여고 동창 정희 덕택에 ‘탕’이라는 식당에서 먹던 도가니 무침이랑 재미나는 이야기들. 중국 투자가들에 밀려 200가 까지 옮겨 간 퀸즈의 한인타운 노던블루버드 길의 상가들. 뉴욕비행장에서 타고오던 차안에서 대한민국을 걱정하던 박 아저씨와의 대화들. 잠시였지만 한국의 기와집인 대웅전 ‘한마음 선원’에 들려 주지스님을 뵙고 초파일 등불을 밝혔던 일.

밤마다 사촌 동생의 콘도 9층 창문으로 맨해튼 빌딩 숲의 전등불빛이 멀리 보이던 아름다운 뉴욕을 기억하리라.

필자소개
경북 사범대 화학과 졸업
미국 샌디에고 30년 거주 수필가
저서 세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출처 : 월드코리안뉴스(http://www.worldkore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