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윤선의 마음치유 컬럼



열린 질문을 하라!(open question)


‘질문으로 동기유발하라!’라는 질문대화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말을 할 때 서술형으로 하지 않고 철저하게 질문으로만 던지라는 겁니다.
서술형은 말하는 사람의 의사와 상관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거의 명령형으로 들리지만 질문은 권유하는 방식이므로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동기유발에 최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유명대학에서는 심지어 강의를 할 때에도 오프닝(opening)과 클로징(closing)은 말할 것도 없고 내용까지도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진행하라고 교수들에게 알려준다고 합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인류의 탁월한 최고 선생이었던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 등이 모두 질문의 달인이었다는 사실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명 강의를 하시는 분들 중 적절한 질문을 잘 하시는 것으로 유명한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주입식 암기교육을 중심으로 살아온 어린 시절 때부터 습관이 되어버린 이들은 말을 할 때 서술형으로 설명을 하거나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핵심을 이끄는 질문을 하라고 하면 말문이 막혀버립니다.

몇 년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기자회견에서 세계 각국의 기자들 중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의 우선권을 준 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때의 에피소드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소중한 기회를 얻은 한국 기자들은 발언권을 받고도 아무도 발언하지 못했습니다. 그 침묵의 시간은 우리들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해주었습니다. 혹자는 주입식 암기교육의 병폐화라고도 하고 혹자는 자유로운 발언을 하지 못하는 한국의 수직 서열관계로부터 온 오랜 세월의 한국인의 습성이라 설명합니다. 어찌보면 수치스럽고 창피한 일이지만 반면 그것을 계기로 다시금 각성하고 바로잡아 올바르고 자유로운 표현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우리는 의식하고 말을 시작했다가 어느새 서술형으로 말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잊지 않으려고 메모장을 준비해 두고도 그걸 보지 않으니 소용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대화하거나 강의를 하는 것은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목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말을 들어주는 청자(聽者)의 입장에서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 즉, 화자(話者)의 입장에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의사소통의 방해가 계속 반복되면서 대화의 수위를 넘어 몸싸움까지 벌어지게 되는 형국이 됩니다. 대화기술에 대해 상식적으로는 잘 알면서도 상황이 닥쳐서 실행에 옮기기란 참으로 어렵기만 합니다. 내 몸에 습관이 되어 질문이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결국 이것도 습관을 어떻게 익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습관을 만들기 위해 먼저 생각해야 할 사항은 ‘묻기를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질문하기를 꺼려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혹시 나의 질문을 듣고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혼자만의 이런 고민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몰라서 묻는 것인데 뭐가 잘못된 건가요?

어린아이들을 보면 호기심 천국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궁금하여 끊임없이 물어댑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말을 배우고 글을 배우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웁니다. 질문에 대한 두려움을 깨뜨리면 질문하기 습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마침내 질문하는 것을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물어보고 대답을 이미 들었더라도 확실히 인지되지 않으면 한 번 더 물어보아야 합니다.

다 큰 성인들의 특징은 ‘모르지만 아는 체하는 것’입니다.
혹시 내가 모르는 것이 들통나면 남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쳐질까 염려하다가 입을 다물어버리거나 자신감을 키우지 못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잘못입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담대하게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되면 질문을 통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알게 됩니다. 질문은 지금 말하고 있는 주제뿐 아니라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는 놀라운 효과를 가져옵니다.

특히, 열린 질문(open question)을 통해 상대방의 다양한 대답을 듣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새록새록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보통 대화를 나눌 때 언쟁의 소지가 일어나기 전을 살펴보면, 대체로 서로 자기중심적 언어를 상대에게 계속 던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하는 말은 나 자신의 기준에 있어 통과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관건을 두며 머릿속으로 살핍니다. 그건 서로를 견제하고 방어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안에는 사랑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오랜 교육은 주입식 암기교육으로 이뤄지고 자유로운 토론형식의 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항상 답을 놓고 질문을 하는 리더나 선생님을 주축으로 온통 긴장이 가득한 상태의 학생들이 주어진 질문에 오답을 할까 늘 노심초사하며 유아동부터 대학시절까지 보낸 이들이 한국인들입니다.

오랜 세월 자유로운 대화방식과 먼 대화생활을 해온 이들은 솔직히 무엇이 자유로운 대화의 방식인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러한 문화와 환경 속에서 살아 습관된 한국인들은 어찌보면 피해자도 되고 피의자도 됩니다. 하지만 이제 잘못된 악습관의 생활화를 깨어난 세대들이 줄을 끊어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생각만으로 마음만으로 더군다나 그저 간절히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변화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바로 즉시 행함, 곧 노력하는 자세로 열심히 행동에 임하는 것 그것만이 새로운 도약의 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3절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란 비유 안에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

마음 디자이너 은 윤선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