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주의 시사칼럼



변죽만 울린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오바마 행정부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북 비핵화 협상을 이끌겠다’며 단계적 방식이 아닌 일괄타결 방식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이번 폼페이오 장관의 평양 방북으로 협상 틀이 과거 방식으로 회귀해 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런데도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대한 진전’이라 하고 김정은도 만족을 표시했다고 전 하고 있다. 이를 두고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무엇이 든 보여줘야 한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비핵화 협상을 최대한 질질 끌려는 김정은의 계산이 맞 아 떨어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면담 내용 중 공개되지 않은 부문에서 그런 성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팩트’만 놓고 봤을 때 동의하기 어렵다. 폼페이오의 방북에서 미국이 목표로 한 것은 영변 핵시설 의 신고·검증과 핵무기·핵물질·핵시설의 리스트 제출이었다. 이는 김정은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 의 진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스트를 제출하지 않은 것은 물론 언제 제출하겠다는 언질도 없었다. 폼페이오가 무엇을 ‘중대한 진전’으로 보는지는 알수 없지만 이런 사실을 놓고 봤을 때 그의 방북은 목적에 이르지 못했다고 하는 게 필자의 평가다.

그나마 ‘진전’으로 포장되는 풍계리 핵실험장의 사찰 수용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이미 6차례 핵실험으로 자체 핵 능력의 ‘신뢰성’을 이미 확보했다. 더 이상 핵실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바꿔 말해 북한에 풍계리 핵실험장은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는 핵무기, 물질, 시설의 폐기·신고·검증이라는 비핵화의 본질이 아니다. 핵심은 건드리지 못하고 변죽만 울린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에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현실을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그 현실이란 북핵 이란 ‘현상’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확인된 사실과 상관없는 일방적 판단이다. 북한 비핵화는 이런 설익은 기대나 근거 없는 낙관으로 되는 게 아니다.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추진력을 만들어낼 최소한의 결과만 가져왔다”며 “중요한 건 중국과 북한이 요구하던 단계별 행동 대 행동 방식으로 협상의 틀이 전환된 것이다”라고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목적은 북한 비핵화 조치에 대한 협의와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 조율 두 가지였다. 2차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비핵화 협상인 점을 감안할 때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 방북을 통해 비핵화 협의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정상회담 일정도 조율할 수 없는 구조다. 때문에 구체적 설명은 없었지만 “북한 방문은 상당히 좋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는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에서 비핵화 협상의 진전과 2차 정상회담의 일정 확정을 추론해 볼수 있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이후 시선은 앞으로 진행될 북미 실무협상에 모인다. 양측이 ‘가급적 이른 시일 내 개최’에 의견을 모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패가 사실상 이 협상 결과에 달렸다. 폼페이 오 방북에서 양측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에 대한 공감을 확대했다면, 실무협상에서 구체적 그림을 그려 넣은 뒤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화룡점정’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북미 양측이 2차 정상회담의 세부사항에 관한 합의에 매우 근접했으며, 북측이 풍계리 핵실험장 해체를 확인하기 위한 사찰단 방문을 초청했다는 사실은 전해졌지만, 영변 핵시설 폐기와 종전선 언과의 ‘빅딜’ 등 폼페이오 방북 전 관심이 쏠렸던 쟁점에 대한 논의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다. 비교적 까다로운 문제들은 실무협상 테이블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디테일의 악마’를 넘어서는 게 지금부터 본격 과제가 된 셈이다. 이제부터 더 중요해졌다.

6월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뤄진 북미 양측 간 실무협상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 때문에 싱가포르 북미 정상합의는 원론적 수준에 맴돌았다. 2차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 려면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정착, 새로운 북미관계 등 싱가포르 합의를 진전시킬 구체적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폼페이오 장관은 비핵화의 핵심 사항과 북한의 주요 핵시설 중 한 곳에 국제사찰 단을 배치하는 문제에 관해 실무회담을 조만간 시작하기로 김정은 과 합의했다고 전했다. 북미 실무협상에서 속도 높은 진전이 이뤄져야 한다.

비핵화의 본질과 거리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풍계리 사찰을 통해 과거 북한의 핵실험 관련 데이터 확보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이뤄질 어떤 비핵화 조치도 제대로 된 검증 관련 합의가 동반돼야 한다. 조만간 김정은 이 러시아를 방문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도 이뤄질 전망이라고 한다. 최근 미북의 적극적 협상 태도에서도 방북 성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에 앞서 “일이 잘 돼서 우리가 목표에 다다를 때 우리는 정전협정을 끝내는 평화협정에 서명하게 될 것”이라며 평화협정까지 거론했던 점에 비춰 보면 특히 종전선언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북한이 평양공동성명에서 동창리 실험장 영구 폐기와 영변 핵시설 조건부 폐기 의사를 밝힌 뒤로 트럼프 행정부가 ‘우선 핵신고’ 주장에서 한 발 물러나 유연한 협상 태도를 보이는 점도 긍정적 신호로 보인다. 과거 숱한 비핵화 협상이 핵신고에 대한 인식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변죽만 울려 좌절됐던 경험을 감안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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