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주의 시사칼럼



한반도 분단의 씨앗 잉태한 얄타회담

  1945년 2월 4일 우크라이나의 소도시 얄타의 리바디아 궁에서 세 거두(巨頭), 즉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이 만났다. 루스벨트는 원래 지중해 인근에서 만날 것을 제안했지만, 스탈린은 건강상의 이유를 들며 모스크바에서 가까운 흑해 부근의 휴양지인 얄타 에서 만나자고 수정 제안했다. 당시 거두들은 모두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고, 이로 인해 후에 한 정신과 전문의는 당시 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세 노인이 모두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별 하지 못하는 다발성 경색 치매’를 심하게 앓고 있었던 상태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얄타회담은 나치독일의 항복을 받아낸 뒤 다른 패전국이나 식민지국가의 처리 방향을 결정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폴란드와 동부유럽 문제, 독일 점령과 향후 관리 문제, 전후 새로운 국제연합 구성 문제, 태평양전쟁과 극동문제 등 제2차 세계대전이 초래한 모든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선 독일 문제의 경우 소련․미국․프랑스․영국 등 4개국이 나치독일을 분할 점령하 며, 독일의 군수산업을 폐쇄 또는 몰수하고, 주요 전범자들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릴국제재판 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전후 배상금 문제는 위원회를 만들어 추후 논의하며, 독일인에 대해 최저 생계를 마련해주는 것 외에는 일체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데도 합의합니다. 주요 전범은 뉘른베르크에서 열릴 국제재판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얄타 회담은 이탈리아가 이미 항복하고 독일의 항복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 하기 위한 자리였다. 1943년 처칠은 ‘욕심쟁이’ 스탈린의 야욕에 대해 걱정했지만, 루스벨트는 말썽쟁이 일본과 독일을 고립시키기 위해 스탈린과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후에 루스벨트의 생각은 너무 안이한 것이었음이 드러났지만, 세 정상은 회담을 통해 전후 전범(戰犯) 국가와 그 점령 지역에 대한 처리 문제에 대한 일정한 합의에 도달했다.

 



이 회담에서 한국문제는 지엽적인 문제로 언급되었다. 신탁통치 문제가 처음으로 제시된것이다. 극동문제는 비밀의정서를 채택하였다. 이는 소련이 나치독일 항복 후 2~3개월 이내에 대 일전 에 참전하며, 그에 상응하여 소련이 러일전쟁에서 잃은 영토를 다시 돌려준다고 명시하였다. 루즈벨트는 피식민지 국가의 자활 능력을 의심하였고 5년 이상의 한반도 신탁기간을 거론하였 다. 그는 한국인의 저력과 국민적 역량을 거의 몰랐을 정도로 무지한 수준이었으며, 스탈린은 이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신탁통치를 언급한 이 짧은 대화가 한반도 운명의 중대한 결과를 났게 되었다. 강대국에 의하여 한민족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된 것이다.

 

그런데 가장 주목할 점은 이 회담이 세계적 차원에서의 냉전,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분단과 일본에 대한 원자탄 투하의 기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루스벨트는 이 회담에서 독일 항복 이후 90일 이내에 소련이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중국의 동의 없이 몽골의 독립, 뤼순항 과  만주철도에 대한 소련의 이권을 승인해 줄 수 있음을 피력하였다. 이는 일본과의 전쟁을 승리 로 이끄는 과정에서 당시 강력했던 일본 관동군의 해체를 소련군에게 떠넘김으로써 미군의 피해 를 줄이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루스벨트의 전략은 그의 사후 소련의 참전을 막기 위해 트루먼 대통령의원자폭탄  사용 결정으로 이어졌다. 두 차례에 걸친 원자탄의 사용은 원자탄 사용 직후 시작된 소련군의 진군을 막기 위해 일본이 빨리 항복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사용해서는 안 될 무기를 최초이자 최후로 사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군은 이미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진군한 상황이었고, 이로 인해 아시아에서는 전범 국가도 아니었던 한국이 분단된 것이었다. 아울러 원자탄의 사용은 결과 적으로 일본이 전범 국가에서 ‘핵 피해 국가’라고 주장하게끔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보면 소련의 태평양 전쟁 참전은 스탈린의 야욕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미국에도 그 책임이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전략’은 태평양 전쟁 내내 엄청난 피해를 본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에도 또 다른 피해를 가져다 주었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가 난관에 봉착해 있다는 현실을 처음으로 인정한 점이 주목된다. 이는 곧 트럼프 미 대통령이 스스로 ‘북핵 위협 종식 전략’이 현재까지 실패했다는 점을 거의 인정한 것으로서, 미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실수를 범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 김정은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한 서약과 약속을 준수하고 따르기를 분명히 기대하지만,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시작부터 쉽지 않을 것이고 장기화될 수 있는 문제임이 이미 지적된 바 있 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서 북핵 폐기의 확실한 보장도 없이 한미훈련 중단을 김정은에 선심 쓴 트럼프의 대북 외교가 김정은의 비핵화 꼼수에 바가지 쓴 꼴로 꼬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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