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주의 시사칼럼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 용어의 모호성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에서 사용하는 용어에 모호한 점이 엿보인다. 4.27판문점 선언과 6.12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확인된 것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였다. 미국의 북한 비핵화 원칙은 싱가포르회담 전날까지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 CVID)’였지만 정상회담 공동회견문에 이 용어는 빠졌다.

북한은 2003년 2차 북핵 위기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한정권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만든 CVID는 ‘패전국에나 적용하는 방식’이라며 이 용어를 거부했다. 실제로 북한은 2005년 6자회담에서 CVID의 ‘완전한’과 ‘불가역적’ 표현이 보상 없는 핵 포기를 요구하고 평화적인 핵 이용까지 허용하지 않겠다는 고압적인 의도가 담겨 있다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지난 5일 북한을 향해 워싱턴을 출발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FFVD)’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계속되기를 고대하고 있다”라고 트윗했다. 그가 7월 2일 미국의 북한 비핵화 방식으로 처음 사용한 FFVD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 행정부가 거론하고 있는 북한 비핵화 관련 용어는 CVID와 FFVD 외에도,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permanent verit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PVID)도 거론됐다. PVID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5월 초 취임사에서 언급한 개념으로, 기존 CVID에 ‘영구적’이란 표현을 더해 북한 핵무기(대량살상무기 포함)를 해외로 반출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를 강조한 비핵화 용어이다. 가히 용어의 난맥상이 엿보인다는 생각마저 든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틀간 협상을 마치고 평양을 떠난 7일 저녁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미국 측은 싱가포르 수뇌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협상에서 미국 측은 CVID 대신 FFVD를 꺼냈을 텐데, 북한 측은 FFVD와 CVID를 동일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FFVD도 CVID와 같이 일방적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불평등한 용어라고 여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공식 매체의 보도에서 주로 사용해왔다. 이는 다시 말해 북한의 핵만 제거하는 일방적인 비핵화 요구에는 응할 수 없으며, ‘미국과 대등한 전략 핵보유국’ 지위 아래에서 상호위협 제거를 위한 협상을 하겠다는 북한의 ‘핵군축 협상’ 논리가 반영돼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만약 미국이 CVID를 주장하려면 북한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체제보장(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 CVIG)’을 수용해야 공평하다는 게 북한의 입장이다.

미국이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 CVID 대신 FFVD를 주장하겠다면 FFVD가 CVID에 비해 무슨 내용이 다른지 북한 측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북미가 비핵화 협상을 원만하게 진행하려면 상대가 서로 수용할 수 있는 비핵화 용어가 우선적으로 정립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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