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 칼럼




운칠기삼과 백래시의 지방선거

이번 선거를 바라보면, 천명은 무엇일까? 우선 그야말로 적폐청산, 지자체 단위로 뿌리박혀 있는 낡고 악한 습관과 편법 불법 탈법과 싸워 승리하는 것이 천명이다. 이러한 적폐의 첫머리에 분단체제가 있고, 종북몰이의 공포정치로 연명하던 세력이 있다.

예전에 선거는 운칠기삼이란 말이 있었다. 후보들뿐 아니라 고위공직자들도 그렇게들 생각했던 것 같다. 영화 <더 킹>에 등장한 통렬한 풍자, 무당에게 물어보고 줄서기를 하던 검찰의 모습이 너무 리얼해서 얼얼했다.
그러나 이때 ‘운칠’이란 것은 변덕스러운 하늘의 장난 또는 사이비결정론적 미래를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운’이란 말은 ‘진인사대천명’(사람이 노력할 바를 다하고 나서 하늘의 도움을 기다린다)이라 할 때의 ‘천명’에 가깝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도 있듯 천명은 민심이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루어내라는 명령이기도 했다. 이를 다른 말로 시대정신이라 한다. 시대정신은 그 흐름을 읽어내는 기를 지닌 후보와 정당을 만날 때 바람이 되어 불어닥친다.

복기해보면 87년 민주화 이래 대선, 총선, 지방선거 같은 전국적 선거는 저마다 나름의 시대정신을 걸고 정치캠페인을 펼친 선거였다. 그리고 천명을 불완전하게 수행한 진보세력이 보수의 백래시(반격)를 당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1987년 대선은 ‘민주화로 군정종식’이 시대정신이었으나 직선제 쟁취라는 작은 전리품을 얻는 데 그쳤고, 1992년 대선은 지연된 군정종식을 이룬 대신 지역주의가 심화되는 대가를 치렀다.
1997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물론 정권교체였지만, 국민이 바라 마지않는 정권교체의 참뜻은 각종 차별에 기대는 패거리주의적 낡은 정치의 개혁이었을 것이다. 이 천명은 2002년 대선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무늬만 개혁된 낡은 정치세력이 여전히 살아남으면서 양극화의 심화를 막아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2007년 대선에서 우리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거대한 백래시, ‘문제는 경제다’라는 보수반동에 직면하게 된다. 2012년 대선 너머까지 이어진 이 거듭된 백래시를 바로잡기 위해 연인원 15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추운 밤거리를 촛불을 들고 모였던 것이 지난 대선의 의미다.

지자체 선거는 그 자체가 자치분권이라는 시대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었고, 차츰 자리를 잡으면서 나름의 독특한 시대정신을 구현해왔다. 그런 모습이 가장 두드러졌던 선거가 바로 무상급식을 둘러싼 공방이 선거의 향방을 결정한 2010년 선거였다. 현재의 기본소득 논의까지를 불러낸 이른바 보편적 복지 주장이 선거의 중심 어젠다가 되었던 선거다. 전진과 후퇴가 있기는 했어도, 길고 무겁고 어두웠던 백래시의 시대가 지나고 최저임금을 둘러싼 공방에서 보듯 다시 시대정신을 다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는 중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선거를 바라보면, 천명은 무엇일까? 우선 그야말로 적폐청산, 지자체 단위로 뿌리박혀 있는 낡고 악한 습관과 편법 불법 탈법과 싸워 승리하는 것이 천명이다. 이러한 적폐의 첫머리에 분단체제가 있고, 종북몰이의 공포정치로 연명하던 세력이 있다. 북-미 정상회담 하루 뒤에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그러한 천명을 잊으려야 잊기 힘들 정도로 운이 흘러간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지난 대선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당선시킨 선거였다. 박근혜에게 도둑맞았던 페미니즘을 되찾아온 선거였다. 여성도 인간임을 선언한 두번째 계몽의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여성의 인간선언은, 배제가 아닌 끌어안음, 돌봄의 윤리를 통해 모든 소수자들을 결국 정치의 주인으로 불러오게 되어 있다. 적폐의 바닥에 놓인 근본적인 차별의식을 드러내고 청산하라는 시대정신의 바람이다. 이제 불어오기 시작한 이 바람은 준비된 후보들을 만나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거세게 불 준비가 되어 있다. 천명의 바닥에 있는 민심은, 여성에 대한 차별의 마음이 깊이 깔린 정치권에 대한 저항을 하고 있다. 성차별은 그 자체가 이미 보수반동, 즉 백래시라는 것을 이미 알 만큼들 안다.

그런데 분단극복이라는 시대정신의 바람이 워낙 거세다 보니, 시대정신이 실제로 실천되도록 살얼음 딛듯이 걸어야 하는 집권당이 긴장이 풀린 것 같다. 강해지면 무지해진다. 발아래가 안 보이기 시작한다. 겉보기에 선거가 천심이 고대해 마지않는 대로 적폐세력을 쪼그라뜨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김수영의 말처럼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던가. 백래시는 단순히 페미니즘에 대한 저항만 하지 않는다. 백래시는 극우적 보수의 무기다. 긴장해야 한다. 모든 분단의 철망이 걷힐 때까지는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