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 칼럼




비밀은 있다

저 장면이 드러낸 것은, 그것을 돌파하는 간절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언제 어디서라도 이렇게 마주 앉으면 수많은 비밀이 풀려나올 것임을 우리가 알아버린 것, 저 두 사람이, 특권자가 아니라 대표자로서 거기 있었음을 세계가 목격할 수밖에 없었던 것.

두 사람이 잠깐 손을 잡기도 하면서 천천히 걸어서 파란 페인트가 갓 칠해진 다리 위의 테이블에 마주 앉았을 때, 아주 특별한 사건이 발생했다. 남북의 최고권력자가 제각기 어떤 배석자도 없이 단둘이 무려 30분간이나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무성영화처럼 전세계로 생중계되며 크고 작은 파문을 일으킨 이 장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치학과 실정법의 해석을 뛰어넘는 이 장면. 김정은 위원장이 북쪽 기자들을 손으로 물리쳤을 때 그 일은 시작되었다.
우리 언론은 그 장면에다 ‘독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독대’는 단순히 단둘이 만나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의미가 강해서 최고권력자를 배석자 없이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독대는 그러니까 목격자 없는 독대다. 대부분의 독대는 어느 한쪽 또는 쌍방이 그 내용을 밖으로 흘리거나 엿들은 누군가가 있음으로써 드러난다. 그러면서 정치적 효과를 이끌어낸다. 비밀을 빙자한 누설이다. 다리 위의 두 사람의 독대는, 독대에 대한 기존 통념과 정반대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 장면의 특이성은 우선 그 공개된 비밀스러움에 있다. 전세계가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목격’한 반면 어떤 대화인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저기서 오간 말은 이데올로기나 진영적 이해를 넘어선 어떤 것이리라는 막연한 기대와 신뢰, 그것뿐이다. 밝디밝은 햇볕이 내리쬐는 정원의 꽃은 오히려 잘 보이지 않듯, 저 말은 보이지 않는데 저기 있다. 강력하게 있다.

이 장면이 마음에 남긴 잔상을 딸이 “검열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였군”이라고 말했다. 정곡을 찌르는 아이러니한 설명이었다. 우리는 그 반대의 상황에는 몹시 익숙하다. 민간인에 대한 도감청이 심심찮게 행해지고, 온갖 곳에 감시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으며, 통화 녹취를 했다가 협박이나 폭로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가장 친밀하고 비밀스러워야 할 연인 사이의 일이 소위 일반인 야동으로 둔갑하여 범죄사이트에 올라가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나라의 대통령이 소위 주적이라 불리는 북쪽의 최고존엄과 모두가 보고 있지만 아무도 엿듣지 못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최고 수준의 정보가 생산되고 정보에 대한 탐색이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놀라운 상징이다. 일상화된 감시와 검열과 불신의 이유를 짚어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분단 구조다. 안보를 빙자하여 사생활의 자유마저 제한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을 단숨에 뒤집어버리는 반전이 이 뒤집어진 비밀대화에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우리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공경의 문화에 속해 있는 같은 민족이라서? 그것도 맞다. 그러나 우리는, 남과 북의 사람이 만난 어떤 자리에서도 보이지 않는 검열의 눈과 귀가 주렁주렁, 심지어 마음속에 매달려 있음을 안다. 언제라도 남남갈등이란 이름으로 머리를 치켜들 괴물이 늘 우리 곁에 살고 있음을 안다, 대통령이든 최고존엄이든, 그가 분단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는 그 힘.

저 장면이 드러낸 것은, 그것을 돌파하는 간절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언제 어디서라도 이렇게 마주 앉으면 수많은 비밀이 풀려나올 것임을 우리가 알아버린 것, 저 두 사람이, 특권자가 아니라 대표자로서 거기 있었음을 세계가 목격할 수밖에 없었던 것.

우리는 이미 경험해버렸다. 통념과 상식에 균열을 내는 시간의 틈새, 세상에서 가장 긴장되고 적대적인 장소의 한복판에서 고립된 섬처럼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아무도 알아낼 수 없는 언어를 공유한, 철저히 두 사람의 의지에 맡겨져 조금씩 드러나는 그 언어와 몸짓의 교환이 드러낸 상징의 의미를 알아버렸다. 돌이킬 수 없다. 종교인이라면 이런 순간을 가리켜 에피파니라고 부를 것이다.

이 비밀을 지켜내려고 국민은 공모 중이다. 트럼프에게 한반도 평화의 열쇠를 주고 노벨상을 추천하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85%에 육박하는 지지를 보낸다. 이쯤 되면 독재라는 일각의 불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방선거를 앞둔 각종 정치적 잡음에도 신경쓰지 않는다. 이 고개를 넘어가야 그동안 우리를 옥죄던 온갖 사슬에서 풀려날 수 있다는 것을, 민중의 몸이 먼저 알기 때문이다. 다 드러나 있는데도 아무도 알려 하지 않아서 여전히 비밀로 있었던 그 이름, 평화. 너무 오랜 비밀.